궤변 그리고 망상

이가 닌자가 무투파였던 건...

풍신 2024. 6. 23. 20:21

닌자! 하면 망상의 산물이라는 둥, 원래는 은밀, 스파이계로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둥 여러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게 아마도 대체로의 경우에선 사실일 겁니다.

 

닌자에 대해서 잘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닌자란 것은 대중매체가 만든 환상이고, 닌자는 스파이 계열이었으며, 별로 제대로 싸울 줄도 몰랐다고요.

 

그런데 일본 역사상 유명한 무투파 닌자 집단이 있단 말이죠.

유명한 닌자 집단이라고 해봐야, 코가와 이가인데,

코가는 역사적으로 코가란 이름 들어간 사건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가는 있어요.

텐쇼 이가의 난이 1차, 2차, 두 차례에 걸 일어났습니다.

예. 그런 이유로 이가 닌자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이가 닌자란 것은 일단 이가국이라고 해서 서부 우에노 분지 일대의, 현 이가시와 나바리시란 곳에 위치한 지역의 율령국으로 하국이었습니다. 여기가 스위스 같이 특산물도 안 나오고 해서 용병을 팔아먹었습니다. 탈주 닌자는 용서 않는다, 서로 적에게 고용된 경우 용서 않고 싸운다 같은 그런 닌자물에서 자주 보는 설정들은 다 이가국의 용병단=이가 닌자들에게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이가 닌자 몇 개의 가문으로 나뉘어 있어서, 두 가문이 다른 영주에게 고용되어 서로 싸우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죠. 12 가문이 있었다고 하고, 그중에 핫토리, 모모치, 후지바야시 세 가문이 우두머리 격이었다고 하죠. 

 

대체로 은밀, 스파이라는 닌자들과 다르게, 이가 닌자는 기본적으로 용병단 포지션이니 게릴라 전술 쓰면서 잘 싸웠습니다.

 

그 와중에 1579년 이가에서 배신자가 나오고,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이걸 들은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카츠가 공을 세워보겠다고 8000명의 병사를 데리고 쳐들어갑니다. (사실은 성을 개수해서 쳐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가 닌자가 개수하던 성을 습격하고, 거기에 화가 난 노부카츠가 병사 데리고 공격한 것) 하지만 이가 닌자들의 야습, 기습, 게릴라전에 대패합니다. 개 쳐 발려요. 실제로 노부나가가 빡쳐서 "노부카츠 너 그따위로 한 번만 더 실패하면 부자의 인연을 끊어버린다."고 화냈죠.

 

즉, 이가 닌자는 대중 매체에서 나오는 슈퍼 닌자는 아니었어도, 용병으로서 노부나가 말기의 노부나가 아들의 병사들 정도는 박살 낼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게릴라 전술로 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뛰어난 게릴라 전사들이었던 거죠. 그러니 다른 닌자들은 몰라도, 이가 닌자는 용병으로서 나름 우수했습니다.

 

뭐 그래봐야 8000명이란 것이죠. 노부나가는 2년 후 또다시 이가에 배신자가 생기고, 당시 이시야마 전투가 끝나서 여유가 생긴 노부나가가 이참에 이가를 공격하자 해서 1581년에 5만의 병사로 이가국을 박살 내버립니다. 이때 이가의 이웃에 있던 코가는 노부나가에 협력해서 길안내를 하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2차 이가의 난이죠. 일본 전국 시대에, 노부나가 말기 이야기의 템플릿이 노부나가가 이가 닌자를 몰살하고, 혼노지에 가 있을 때 아케치가 적은 혼노지에 있다고 해서 통수 맞은 노부나가가 죽고, 나무 아래 원숭이가 그 복수를 하는 내용인데, 그 시작이 바로 이가의 난입니다.

 

그렇게 이가의 마을은 몰살당하고 성을 불타버리고, 이가는 완전히 세력을 잃고 살아남은 이가 시노비들은 각지로 흩어지게 되는데 이 이가의 생존자들은 혼노지에서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봉기를 일으키고 하지만, 노부나가가 죽어서 별로 이가가 날뛰어도 어쩌라고 상태였던 것 같더군요.

 

노부나가의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노부나가가 죽으면서 자기도 목숨이 위험해지게 되어 도망치게 되는데 핫토리 마사나리(2대 핫토리 한조)가 호위해서 데리고 이가를 넘어(伊賀越え) 미카와로 돌아가게 되고, 도중 이가 지방의 상급 닌자 집안인 핫토리는 코가와 교섭해서 코가의 지역을 안전히 통과할 수 있도록 하고, 이가의 생존자들을 모아서 호위로 쓰거나 하며 공을 세웠죠. 이후 코가는 토요토미 원숭이의 세력하에서 이에야스를 견제하는 임무를 맡게 되고, 이가 닌자들은 이에야스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서브컬처에서 유명한 이가 닌자 VS 코가 닌자의 원전이 되는 대립을 하게 되고, 핫토리 한조(2대)가 이가의 두령을 맡게 됩니다. 전국시대가 계속되는 동안엔 이런저런 명령을 받고, 세키가하라 같은 전투에 척후나, 정보 수집, 조총 부대로서 파견되고, 이후에도 성의 경비를 서거나 마을 치안에 협력하다가 이런저런 난이 일어났을 땐 (예를 들어 아마쿠사 시로의 시마바라의 난) 진압하는 데에 파견되어 용병일을 했던 것 같지만, 전국시대가 끝나면서 흐지부지 되어 일부의 사족을 제외하곤 농민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결론은 닌자라고 해도 천차만별이라, 스파이만이 아니라 용병집단 같은 닌자 세력도 있었다는 겁니다.